[전시] 세대를 넘어 전통을 계승하는 장인들, 국립민속박물관 ‘수제화 장인’ 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오는 10월 15일까지
기사입력 2018.06.22 02:03 조회수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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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근현대 직업인 생애사사업의 일환으로 2014년 송림수제화를 조사하고, 을지로 수표교에서 480- 송림수제화의 장인들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세대를 넘어 - 수제화 장인> 특별전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었다.


 


구두는 구한말 일본어 くつ구츠)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몇 대에 걸쳐 수백 년의 가업을 잇는 소상공인의 천국일본에서도 대를 잇는 제화공 가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최근 사라져 가는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노력에 그 중 하나인 수제화가 매스컴을 통해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맞춤구두, 즉 수제화 산업은 이미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화들에 밀려 사양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송림수제화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왜냐하면 1936년 이래 창립 82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도 창업자의 증손자에 해당하는 4대가 계속 가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보고서는 KBS TV 프로그램 <백년의 가게>(2012. 11. 25 방영)에도 소개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명장인 송림수제화480년간의 역사를 주목했었다.


 


서울 중구 수표로에 1936년 터를 잡고 6·25전쟁 직후 영국군 군화를 개조해 한국 최초의 등산화를 만들면서 유명해진 송림수제화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4의 인생역정이라는 생애사와 생업 활동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보게 해 준다.


 


매년 10억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으로 명색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제화의 명가 가운데 하나인 송림수제화이지만,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자리 잡은 한 허름한 건물의 3층과 4층에 각 층당 16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3층 매장에는 남성화, 여성화, 골프화, 등산화, 특수화 등 다양한 제품이 전시 판매되고 있으며, 4층 공장은 가죽 원단부터 목형 등이 갖춰져 7명의 장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송림수제화의 1대 이귀석 옹이 1936송림화점(松林靴店)”을 개업, 1996년 창업자 이귀석 옹이 별세 후, 차남 이덕해와 조카인 임효성 두 사람을 공동대표로 맞이한다. 하지만 2009년에 이덕해 사장은 성실한 교인으로서 선교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레 고종사촌인 수제화기술자 3대 임명형 사장이 가업을 이어받게 되었고 현재는 그의 장남 임승용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며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차남 임승철 군은 현재 군복무 중이라서 제대 후 함께 가업을 이어갈 것이라 한다.


 


 


3대 임명형 사장(우)과 그의 장남 임승용(좌)


 


 


송림수제화는 손님의 발 형태를 정확히 측정하는 일에서부터 발의 길이, 넓이, 발등의 높이까지 재고 본을 만들어 재단과 재봉, 밑창 제작에 들어간다. 평균 2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장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은 이렇게 천 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


 


40여 년 전 처음 이곳에서 등산화를 처음 구입한 산악인 허영호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산과 수많은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 ·북극 횡단에 나설 때 송림수제화에서 만든 등산화와 함께하였으며, 1977년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반한 고 고상돈을 비롯하여 노산 이은상 등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고객이었다.


 


 


3대 임명형 사장


 


까다롭게 만들어야 사람과 같이 움직이는 신발이 됩니다. 좋은 신발은 신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가죽이 발을 감싸고 있게 됩니다. 걷고 뛸 때 맨발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발의 감각을 느껴야 최고의 신발입니다.” (3대 임명형 사장)


 


발이 바깥쪽으로 힘을 받아서 신발이 바깥쪽으로 닳죠?”, “평발이시죠?” 전시장에서 만난 임명형 사장은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서있는 모습만 보고도 발의 특징을 바로 잡아내는 모습에 그냥 구두만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구나 싶었다.


 


디자인만 생각하면 발은 절대로 편안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디자인을 고르고 발을 맡기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오래 신으면 발이 변형된다. 20대에 힐을 많이 신지만 40~50대 되면 발이 변형되어서 우리 가게로 찾아온다며 그래서 착용감이 편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임명형 사장은 자신도 그렇고 1, 2대 선대들도 모두 27살에 수제화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일화를 밝히며 그리고 수제화가 사양길에 있지만 지금 구두를 주문하면 3개월 후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주문이 많이 밀려있다고 한다. 또한, “일반구두, 등산화, 의료용 구두의 비율은 4:4:2 정도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격은 40만 원에서 8, 90만 원 선까지 용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수제화라 그런지 기성구두 보다는 값이 비싸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죽 재단, 갑피(바닥창을 뺀 가죽 부분을 디자인에 맞춰 자르고 박음직해서 붙이는 공정), 저부(갑피를 바닥창에 붙이고 밑창과 굽, 깔창 작업까지 해 구두를 완성하는 공정)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송림제화의 작업현장을 전시장에 펼쳐 놓았으며, 주말에는 이곳의 장인들이 직접 시연을 보인다. 전시품으로는 송림수제화 간판과 광고지, 고객 감사편지, 산악인 허영호의 수제 등산화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갖바치가 만들었던 징신’, '구두를 신은 고종황제의 사진‘, 구두 제작과 수선에 관한 광복 이후의 저서 구두 만드는 법 고치는 법 등 유물과 기록, 사진, 동영상 등 약 131224점을 선보인다.


 


 


조선시대 갖바치가 만들었던 ‘징신’


송림수제화의 등산화


산악인 허영호의 북극해 횡단 등산화


전시장에서 시연을 보이는 송림제화의 장인들


 


 


이번 전시는 구두라는 특정한 제품을 보여주지만 재개발과 난개발이라는 도시화의 정반합 과정에서 직업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보여 주기도 아울러 대량 공장생산에 맞서서 사양길에 접어든 이들 수제화 업계의 영고성쇠를 보여 주면서 삶은 무엇이고 직업은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화두처럼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서울문화인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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