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첩 이야기] 아버지의 다정한 걱정, 어머니의 노을 빛 치마

기사입력 2016.06.19 20:57 조회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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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첩으로 구성된 하피첩


 


 


[서울문화인] 정약용 선생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다. 그의 삶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배 생활.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황사영이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 주교에게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막아달라고 편지를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으로 전라남도 강진으로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긴 헤어짐의 시간을 아파한 정약용 선생의 부인 홍씨홍혜완은 혼인 때 입었던 치마를 정약용 선생에게 보냈고, 정약용 선생은 그 치마에 글을 새겨 아들에게 남겼다. 이것이 <하피첩>이다. <하피첩>의 특별전과 국역서 발간에 힘을 쏟은 권선영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정약용 선생, 기러기 아빠로 살다


 


Q. 정약용 선생은 강진 유배로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무려 18년이다.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권선영 학예연구사이하 권선영_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을 당시 두 아들이 19, 16세였고 막내 딸이 8세였어요. 아들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나이였고, 막내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울 때였죠. 이렇게 한창때의 아이들과 남편 없이 집안을 끌어가야 할 부인을 남겨두고 먼 길에 오르는 정약용 선생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정약용 선생은 풍족하게 살았던 인물은 아니에요.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종 아이가 옆집 호박을 훔쳐다 죽을 쑨 적이 있어요. 사실을 알고 부인은 종을 크게 혼냈고, 정약용 선생은 그 모습을 보면서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을 호박넋두리南瓜歎라는 시에 적기도 했어요.



가장이 있는 삶도 이러했는데, 하물며 긴 유배를 떠난 집은 말할 것 없이 궁핍했겠지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아내가 가재도구를 내다 팔거나 양잠 등을 했고, 두 아들도 농사를 지었던 모양이에요. 큰 아들이 수확한 마늘을 팔아 번 돈으로 아버지를 찾아 뵌 적도 있다고 해요.



 


Q. 무엇보다 아내에게 굉장히 미안했을 것 같다.


 


권선영_ 가족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겁니다. 원래 정약용 선생과 부인 홍씨 슬하에 63녀의 자녀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단 세 명만 살아남았죠. 그런 마음고생은 물론이고, 자신이 멀리 있는 동안 혼자서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없는 형편에도 대단히 애를 쓴 것만으로도 정약용 선생은 아내에게 큰 고마움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정약용 선생이 남긴 글들 곳곳에 아내를 향한 미안함과 애틋함에 깊이 서려있어요.



 


Q. 정약용 선생은 어떤 아빠였을까?


 


권선영_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엄격한 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가족에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를 상황에서 <하피첩>을 통해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훈계의 글을 남겼어요. 그 서첩을 썼을 때엔 이미 아들들은 장성해서 28, 25세가 되었고, 장손도 태어난 상태였어요. 시집간 딸에게도 다정한 그림을 그려 보내 애틋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멀리서도 자식들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걱정하고 염려하던 아버지였죠.




 


늘 아이들이 염려스러운 아빠와 엄마의 마음 <하피첩>


 


Q. ‘하피첩이란 무엇인가.


 


권선영_ 단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시절 부인이 보낸 치마에 두 아들에게 보내는 교훈을 남긴 서첩입니다. 부인이 보낸 치마는 혼인 때 입었던 붉은 색 치마였는데, 색이 많이 바랜 상태였어요. 붉은 치마를 뜻하는 홍군紅裙대신 노을 하, 치마 피, ‘노을빛 붉은 치마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습니다. 남편을 그리워한 아내의 마음이 노을빛 붉은 치마로 아름답게 표현된 거죠.



 


정약용 선생이 결혼한 딸에게 그려 선물한 매화병제도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3첩(부치손)


다산사경첩(윤영상 소장)


 


Q. 하피첩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권선영_ 총 네 개의 서첩이 쓰여졌는데, 현재 발견된 것은 세 개의 서첩입니다. 첫 번째 서첩에는 가족공통체와 결속하며 소양을 기르라고 적고 있어요. 효제孝悌가 인을 실행하는 근본이며 부모 형제간 화목을 당부했습니다. 두 번째 서첩에서는 자아 확립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으며 근검하게 살아라고 했습니다. 집안은 비록 풍비박산 났지만, 실망 말고 몸과 마음을 닦아 부지런히 살아가라고요. 세 번째 서첩에서는 학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에 대비하라고 했어요. 온 마음을 기울여 자신의 글을 연구하여 통달하기를 당부하는 내용이에요. 효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나를 세우며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는 정약용 선생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시집간 딸에게 띄운 <매화병제도> 역시 아내의 치마에 그림과 글을 담았습니다. 화폭에 담긴 새 두 마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저는 이것이 정약용 선생이 정말 꿈꾸던 부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비록 네 부모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너만큼은 그림 속 새처럼 한곳을 보며 살아가길 바란다는 아빠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림이 아닐까요.


 


Q. <하피첩>이 폐지 모으는 할머니의 수레에서 발견됐다. 왜 거기에 있었으며 어떻게 국립민속박물관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권선영_ 2004년 수원에서 폐지 모으는 할머니 수레에 담겨 있는 것을 인근 공사장 인부가 발견하셨대요. 아마 정약용 선생의 후손이 보존하고 있다가 한국전쟁 때 분실하고, 여기 저기 세상을 돌아다니던 서첩이 그때 발견된 게 아닐까 싶어요. 2006년에 KBS 진품명품에 나와서 정약용 선생이 쓴 <하피첩>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당시 최고가인 1억 원의 평가를 받았다고 해요.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 중인 <매화병제도>과 비교하며 같은 치마 천임을 확인했고요.



그 후에 이 서첩을 부산저축은행 대표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파산과 함께 경매에 나왔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약 75천만 원 정도에 매입했습니다. 박물관 1년 유물 구입 예산의 1/3 가량을 들여서 구입했어요. <하피첩>은 생활사 박물관인 우리 박물관에서 결혼 생활과 자식 교육 등에 대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정약용 선생은 <매화병제도><하피첩>을 총 네 개의 서첩으로 만들었다고 언급했지만, 남겨진 서첩은 세 권뿐이라 나머지 하나가 정말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우리 박물관에서 매입 후 진행한 보존처리 과정에서 서첩에 을, 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갑을병정의 순서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도 세울 수 있었죠.



 



보존처리 과정에서 발견한 乙을, 왼쪽, 丁정, 오른쪽이 쓰여진 모습. 이를 통해 <하피첩>이 총 네 개의 서첩이라는 사실에 힘이 실렸다.


 


가족이 우선이란다


그의 말은 지금에도 통용된다


 


Q. 1810년에 만들어진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권선영_ 요즘 사건사고가 참 많잖아요. <하피첩>을 처음 구입하고 전시 준비를 하고 있던 무렵에는 부모의 아동학대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어요. 그 뉴스들을 보면서, 아 정말 이 시절에 꼭 필요한 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누가 누구의 어버지이고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를 끝내 알지 못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화목한 가정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요즘은 친척간의 교류도 많지 않을뿐더러 가족간에 느긋하게 대화할 시간도 없잖아요. 가족 해체도 흔한 일이 되었고요. 정약용 선생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가족끼리 정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메시지요.



   


Q. 특별전은 막을 내렸지만, <하피첩>의 국역서 발간은 정말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전시와 국역서를 통해 무엇을 얻었으면 하는지.


 


권선영_ 무엇을 얻길 바란다는 큰 꿈은 없어요. 전시장을 찾은 분들이 , 하피첩이다.’, ‘정약용 선생이 썼구나.’, ‘치마 천에 직접 썼네?’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관람객에게 이 책이 쓰여진 경위에서부터 정약용 선생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업적을 가졌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모두 주입하는 것은 결코 박물관 관람의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 적어가는 것보다는 이런 유물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 돌아가서 그 가족만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이 유물에 특별한 관심이 생기면 그때 유물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으면 해요. 이것이 바람직한 박물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피첩>은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가족의 의미는 아이들이 글자로 배우고, 설명으로 이루어지는 수학 공식 같은 것이 아니다. 부모의 역할에는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 이를 생활에서 보여주어야 할 의무 또한 담겨 있다.


 


유물과학과 권선영 학예연구사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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