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령 정상에서 만난, 의상대사와 현각스님

‘사색과 명상이 있는 마구령(馬駒嶺) 철학자의 길’ 도보 탐방기
기사입력 2009.05.03 18:54 조회수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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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浮石寺), http://www.pusoksa.org )에서 마구령(馬駒嶺)을 넘어 현정사(現靜寺)까지 걸어갔다. 4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지만, 800미터를 넘는 고개를 넘어야하고, 사람도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외롭기만 하다.


부석사는 1,400년 전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종찰로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절이다.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 무량수전 앞 석등, 안양루, 부석 등이 유명하며, 특히 초저녁 무량수전 앞에 서서 바라보는 산세가 일품인 곳이다.



마구령(馬駒嶺, 820m)은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부보상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길이라고 하여 마구령이라 불렀다. 상인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지만 이곳에는 순흥과 고치령처럼, 단종과 금성대군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남대리(南大里)는 정감록에 나오는 길지이며, 소백과 태백을 가르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숨겨진 명당이다. 주민들은 옛날부터 산 너머 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면 이웃의 단양군 의풍리, 영월군 노루목 사람들과 나무와 약초 등을 지게에 지고 고치령을 넘어 순흥장, 단산장을, 마구령을 넘어 부석장을 다녔다.



아울러 남대리는 순흥에 유배와 있던 금성대군이‘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할 때 병사를 양성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남대리에는 단종이 잠시 머물렀다는 빗적거리에 단종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2008년 200만원의 예산으로 석축을 쌓았으며, 사방 6m의 피쪽집을 짓고 단종대왕비와 장승 2개를 세웠다.



단종쉼터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터는 집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하여 생방터로 불리고 있으며, 영월에 유배되어 있던 단종의 수하와 순흥의 금성대군간의 밀지가 오간 곳이라는 말이 있다. 영월에 유배된 단종이나 순흥에 안치된 그의 숙부의 한이 서린 유적임에 틀림없다.”라고 한다.



남대리에서 길을 조금 더 가면 현정사(現靜寺)가 위치한 어래산((御來山)1,063m)이 나온다. 어래산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 강원도 영월이 만나는 ‘삼도봉’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현정사는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가 만나는 어래산 아래에서도 가장 길지로 알려진 남대리에 터를 잡은 절이다.



지난 2001년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 국제선원으로 창건된 현정사는 미국 예일대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던 중 지난 89년 숭산 스님을 만나 이듬해 출가한 현각(玄覺)스님이 잠시 주지로 있던 곳이다. 



현정사는 불교도인 정광명장(법명)씨가 사재를 털어 스님들의 참선수행을 돕기 위해 만든 사찰로, 평소 외부 활동을 자제해온 현각스님은 정씨의 각별한 요청과 숭산스님의 허락을 받아 주지를 맡았었다. 



현각은 그 동안 <바로보인 증도가>, <백유경>, <선의 나침반>, <만행 1, 2>, <선학강의>, <오직 모를 뿐>, <부처를 쏴라>등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책 <만행 1, 2>는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부제로 발표되어 대단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현각에게 만행은 남다른 것도, 아주 특별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에게 만행은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일 뿐이다. 


 



걷고 얘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빰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질주하는 차를 바라보는 것,
친구와 악수하며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이다.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모든 것 
이것이 바로 만행이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다. '막다른 궁지' 혹은 '끝장'을 뜻하는 말로 뾰족한 묘안이 없어 어찌할 수 없게 된 사태를 뜻하는 말이다. 한자말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하나가 된 말이다. 그리고 이 이판과 사판은 불교 용어로서 조선시대에 생성된 말이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건국이념으로 불교를 억압하고 유학을 섬기는 것을 정책기조로 잡았다. 이것은 고려 말 ‘팔관회’등의 불교 폐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조선의 건국에 정도전과 같은 신흥 사대부 세력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불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정권교체와 함께 한순간에 숭배에서 탄압의 대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하층민으로 전락한 승려들 또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되었는데, 그 하나는 사찰을 유지 존속시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불교의 역사와 맥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스님들은 절이 없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보기 위해 기름, 종이, 신발 등을 만드는 잡역에 종사하면서 사찰의 살림을 유지했다. 한편, 이들과는 달리 산간오지로 숨어들어 은둔하면서 사색과 명상,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는 승려들도 있었다. 이를 두고 앞의 잡역에 종사하는 스님들을 사판승, 뒤의 은둔하면서 참선을 주로 하는 스님들을 이판승이라 부르게 되었다.



결국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의 현대불교가 융성하게 된 것도 이 두 종류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원래의 이판사판의 뜻이 경도되어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억불정책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정책이었다. 승려는 최하계층으로 전락하였으며, 도시 중심에 위치한 성안으로의 출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당연히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막다른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판이나 사판은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이다.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와 해방 직후, 정권차원에서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더욱 부정적 이미지로 몰아갔다. 이 두 부류를 정치적으로 이용, 서로 반목과 분열을 조장하여 이판사판의 잘못된 모습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은 뾰족한 대안이 없을 때 무의식으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쓴다.



갑자기 이판사판에 대한 근원과 설명을 쓴 이유는, 현각스님은 은둔하면서 사색과 명상을 통한 참선수행을 주로 하는 이판승이다. 그런데 지난 2001년 사판승이 하는 절의 주지 일을 맡았다. 이판승에게 사판승이 하는 일을 맡겼으니, 현정사에는 손님들이 들끓었고 조용한 남대리가 차분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인지 그는 정진수행을 위해 이내 주지를 그만 두고, 다시 구도자의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현정사(現靜寺)에 남아 있는 듯하다. 어래산 아래 현정사를 찾는 많은 불자들은 아직도 현각스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고, 나 같은 사람도 그의 <만행>이라는 책에 감동하여 절을 둘러보았다.    



이번에 도보로 넘은 부석사에서 마구령을 넘어 현정사 가는 길을 내 나름대로‘사색과 명상이 있는 마구령 철학자의 길’이라고 정한 것은, 이 길이 1,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의상대사와 현각스님이 공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이며, 4시간 동안 사색과 명상만으로 편안하게 넘을 수 있는 산책로이기 때문이다.  



봉황산(鳳凰山) 부석사는 대충 둘러보았다. 안양루와 무량수전, 부석을 보고 바로 마구령으로 향했다. 주차장을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임곡리로 가는 길목인 두봉교가 나온다. 이곳부터는 935번 지방도로를 따라 임곡천을 보면서 천천히 길을 나서면 된다.



10분 정도 올라가면서 왼쪽에 폐교된 부석북부초등학교 터에 자리 잡은 ‘영주 소백산 예술촌(http://cafe.daum.net/yjsbmartv)’이 보인다. 영주에서 연극연출과 그림을 하면서 지역의 각종 문화 행사와 예술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조재현씨가 촌장을 맡고 있고, 영주출신의 홍익대 미대 이두식 교수, 극단 미추의 손진책 감독 등이 작업실과 연구실로 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여름 밤, 전국의 예술인들을 초청하여‘달빛 별빛 공연이야기’행사를 치루고 있다. 여기부터 길을 따라 한밤실 마을 거쳐 임곡리 보건소를 지나 임곡교를 건너면 바로 마구령 초입에 다다른다. 부석사에서 도보로 1시간이면 이곳에 다다른다.



이곳부터‘사색과 명상이 있는 마구령 철학자의 길’을 넘게 된다. 친구나 가족이랑 함께 넘어도 좋고, 혼자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도 좋은 길이다. 인적이 드물고, 차량 통행도 거의 없어 걷는데 불편함은 없다. 폭 3m 정도의 좁은 길은 포장과 비포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평지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넘으면 2시간 정도면 산 넘어 남대리에 닿을 수 있다.



옛날 나무꾼들과 부보상들을 생각하며 걷기도 하고, 의상대사와 현각스님을 떠올리며 걷기도 한다. 시나 소설의 한 구절이나 명언을 떠 올리며, 혼자 말을 해가며 고개를 넘는다. 힘이 들기는 하지만, 1시간 정도는 충분히 마구령 정상에 도달한다.



마구령에서 영주와 단양 방면을 하늘과 나무 틈 사이로 멀리보이는 인가들을 보면서‘나도 스님이 되어 이 길을 넘는 것이 소원인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다시 아래로 길을 잡으면 이내 남대리 주막거리가 보인다. 우측의 농가는 노인들만 사는지 옛날 집 그대로이고 주막거리 표지석이 있는 좌측의 농가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다. 바로 다리 아래 냇물이 좋다. 단양까지 흘러가는 마포천이다. 남대리의 시냇물도 이웃한 단산면 마락리의 냇물처럼 경상도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한강수계이다.



정감록에 나오는 길지 중에 하나인데다가 물과 계곡, 산세가 좋아 남대리는 최근 별장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길을 따라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빗적거리 단종쉼터에 단종대왕비와 장승 2개가 보인다.



그 옆에는 남대리에도 산양삼(장뇌삼)이 많이 나는지, 산양삼조합 간판과 판매장이 보인다. 다시 조금 더 길을 내려가면 부석초등학교 남대분교가 있다. 학생 4명이 다닌다는 이곳은 너무 조용하여, 폐교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한산하다. 학교 바로 옆에는 작지만 지붕이 멋있는 남대교회가 있다.



길가에 민박집과 식당, 마을회관, 가게 등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인적은 거의 없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어래산이 보이고, 산 중턱에 현정사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엄청나게 큰 절도, 작은 절도 아니지만, 아래에서 고개를 쳐들고 봐야하기 때문인지 앞에서 보기에는 위용이 대단하다. 입구에서 물을 한잔 마시고 경내를 둘러본다. 대웅전과 경내 경관도 좋지만, 절을 품고 있는 어래산의 소나무와 숲이 더 좋았다.



부석사처럼 대웅전 앞에 서서 정면의 산을 바라보는 것도 정겹다. 산이 중첩되어 있지는 않지만 큰 산이 시야를 반쯤 가리고 있는 것이 보기에 좋았다. 요사채 뒤편에 있는 수돗가에 작은 돌부처가 좋았고, 절 입구의 대나무도 좋았다. 석축과 절 입구의 샘물도 최고였다.



어래산 아래 남대리의 길지에 절을 있어서 인지, 지금은 퇴임한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는 퇴임 직후 3일 동안 이 곳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나도 사흘 정도 이곳에 머물면서 산새와 목탁소리에 취해 철학서를 3~4권정도 읽을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 길 안내: 서울에서 영주까지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영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부석사까지 가는 버스가 40-50분마다 한 대씩 있다. 부석사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부석사를 1시간 정도 둘러 본 후, 마구령을 넘어 남대리 현정사로 가면 된다. 길은 대략 4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현정사를 둘러본 후 되돌아와 풍기나 영주에서 하루 밤을 보낸 다음, 다음 날 소수서원, 선비촌, 희방사, 무섬마을 등을 더 둘러보는 방법이 있고, 길을 더 가서 단양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당일치기 도보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관리계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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