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황태영 선생의<풀이 받은 상처는 향기가 된다>

조선선비의 고고함을 느낄 수 있는 수필집
기사입력 2009.07.13 17:39 조회수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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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최근 출간된 황태영 선생의 수필집 <풀이 받은 상처는 향기가 된다>(Human & Books)는 동양의 오랜 고전인<채근담>이나 유태인들의 생활서인<탈무드>를 읽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오는 수작이다.


 


일 년을 사계절로 나누어 봄은 상생(常生), 여름은 상선(上善), 가을은 지혜(智慧), 겨울은 극기(克己)로 구분하고 있는 책은 사계절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도 감동이 남다를 것 같은 읽을거리와 행복이 있어 좋다.


 


상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봄엔 연꽃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진흙에서 나오되 얼룩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가지도 치지 않고 덩굴도 뻗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게 고요히 서 있어 멀리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희롱할 수 없음을 사랑한다.”


 


우리는 연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우선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더럽고 추해 보이는 흙탕물에 피는 연꽃은 조금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는다. 둘째 화과동시(花果同時)이다. 연꽃은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 잡는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워서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일이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을 말한다. 즉, 실천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는 종자불실(種子不失)이다. 연꽃은 씨앗은 수천 년이 지나도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싹이 든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맺어지는 인과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모든 만남, 모든 인연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넷째 진공묘유(眞空妙有)다. 연꽃은 뿌리부터 줄기까지 텅 비어 있다. 참으로 빈 곳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연꽃은 참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특히 연꽃을 꺾으려면 흙탕물에 빠져야 하기에 연꽃은 바라보기만 할뿐 꺾을 수는 없다. 존재 자체로 값진 꽃, 그것이 바로 연꽃인 것 같다.


 


상선(上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여름에는 ‘풀이 받는 상처는 향기가 된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의인(義人)은 향나무처럼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 프랑스의 화가 루오의 그림 제목이다. 향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찍은 도끼는 원수다. 그럼에도 향나무는 자신의 아픔을 뒤로하고 원수의 몸에 아름다운 향을 묻힌다. 피아의 구별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관용과 화해만 있을 뿐이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진짜와 가짜와의 구분은 쉽지 않다. 진짜 향나무와 가짜 향나무의 차이는 도끼에 찍히는 순간 나타난다. 요즘 인테리어로 사용하는 조화나 인조 나무들은 너무나 진짜 같아 얼핏 보면 진짜와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진짜는 반드시 상처를 받으면 향기를 피운다.


 


결국, 나무나 풀은 상처받을 때 향기를 내는 법이다. 평소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고통과 고난이 닥치면 진짜는 향기를 내뿜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고난이나 시련이 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상처 없이 성장하는 인간은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모든 위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역경을 돌파하여 자신의 입지를 다진 것이다.


 


지혜(智慧)를 가득담은 가을에는 감을 통하여 세상을 배운다. 겉과 속의 빛깔이 같은 과일은 많지 않다. 가을을 대표하는 감은 겉과 속이 같이 붉어 충(忠)을 상징하며, 또한 과육이 부드러워 노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기에 효를 나타내기도 한다.


 


감은 봄부터 가을까지 그 잎과 꽃과 열매로 온갖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맛을 보여주고, 감동을 안겨주고, 쉼터를 내어주고, 깊은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감을 보며 세상의 몇 가지 지혜를 깨우친다.


 


첫째는 겸양(謙讓)이다. 모든 나무가 서로 먼저 봄을 맞이하려고 다투지만, 감은 그 차례를 모두 양보하고 느지막한 5월에 들어서야 유난히 눈부신 빛으로 잎을 피운다. 겸양의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에 유달리 윤기가 나는 듯하다.


 


둘째는 나눔과 베풂이다. 감은 자신의 꽃을 희생하여 굶주린 사람의 허기를 달래준다. 감꽃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생명의 꽃이다. 셋째는 조화(調和)와 부쟁(不爭)정신이다. 감나무 잎만큼 곱고 아름다운 잎은 없다. 빨강과 노랑과 풀빛 세 가지 빛깔이 섞여 어우러진 감나무 잎은 어울려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넷째, 절제의 미덕을 가르쳐준다. 감을 따다 보면 그 붉은 유혹을 뿌리치기가 매우 어렵다. 1cm만 더 손을 뻗으면 되는데 하여 조금 더 욕심을 내다보면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사람의 손길만큼만 따고 남은 것은 까치에게 주라는 자연의 가르침인 듯하다. 절제된 여백의 미가 아름답듯 욕심을 경계하고 공존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야 할 것 같다.


 


극기(克己)를 말하고 있는 겨울에는 꿀은 겨울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양봉업자가 열대지방에 갔다. 열대지방은 사시사철 여름이라 온갖 꽃이 만발하였고, 벌을 키우면 많은 꿀을 딸 수 있을 듯하였다. 양봉업자는 시험적으로 벌통 열 개를 가지고 갔다. 얼마 못되어 벌통에는 꿀이 가득 찼다.


 


확신을 얻은 양봉업자는 빚을 내어 벌통 만 개를 들고 다시 열대지방으로 갔다. 첫해에는 벌통 만 개에서 꿀을 두 번 따는 수입을 올렸다. 양봉업자는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다음해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꿀을 한 번밖에 못 따는가 싶더니 그 다음해부터는 아예 꿀이 거의 모이지 않았다. 그 양봉업자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양봉업자가 망한 이유는 이렇다. 꿀벌들이 꿀을 모으는 것은 꽃이 없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겨울 준비를 하던 꿀벌들이 열대지방에서는 꽃이 언제나 핀다는 것, 즉 겨울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꿀을 모으지 않았던 것이다. 꿀은 악조건인 겨울의 산물이다.


 


항상 여름인 나라에서는 꿀을 얻을 수 없다. 꿀은 겨울이라는 악조건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열매이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고통과 아픔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이 없다면 우리 삶은 곧 시들고 만다. 남다른 고난을 극복했을 때만이 진정한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황태영 선생의 수필집<풀이 받은 상처는 향기가 된다>에서는 옛 동양의 고사를 은유와 묘사의 기법으로 인용하여 현실을 다시금 보게 하는 글 힘이 있다. 풍기 출신의 학자 금계 황준량 선생의 후손답게 선비의 고고한 기상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수필가 황태영 선생은 1961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출신으로 대구고를 졸업하고, 건국대에서 법학사,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보문학>을 통하여 수필가로 등단을 했으며, 증권가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다도와 글쓰기를 즐기는 선비다.


 


김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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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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