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의 영주, 봉화여행기] 불교와 유교 문화가 꽃피는 문화마을 순흥면

기사입력 2009.09.28 00:26 조회수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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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도착하여 차를 타고 순흥면에 위치한 선비촌으로 갔다. 선비촌은 영주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고택과 초가집을 복원한 가옥단지로 입구에 공연장과 전통 음식점, 지역 특산물 매장, 공예 체험장, 염색 체험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입구의 공연장에서 ‘순흥 초군청 마당놀이’공연이 있다고 하여 달려간 것이다. 하지만 격주로 마당놀이공연이 있고, 이번 주는 청소년들을 위한 춤 공연이 있다고 하여 늦은 점심이라도 먹기 위해 면 사무소 인근에 있는 순흥전통묵집으로 이동했다.


 


묵밥은 메밀묵을 무채보다는 굵은 크기로 썰어 담고, 그 위에 야채와 양념간장, 멸치육수를 부어서 내는 음식으로 기장밥을 말아 김치 등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40년 전통의 묵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 음식점 마당에 열린 머루를 몇 알 따서 먹은 다음, 묵을 제조하는 식당 우측 묵 공장에 들어 묵을 쑤고 있는 아주머니와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묵을 만드는 공정을 구경했다.


 


영주지역에서 나는 메밀을 일일이 갈아 가루를 낸 다음, 가마솥에 물과 함께 넣어 약한 불에 1시간 정도 가열한 다음, 틀에 담아 하루 정도 식히고 굳히면 묵이 완성된다고 한다.


 


묵을 만들면서도 멸치육수를 만드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바쁘다. 생각보다는 간단해 보였지만, 손이 많이 가고 정성도 상당해 보였다.


 


묵집에서 나와 바로 우측에 있는 기지떡(술떡, 기정 떡, 증편이라고도 함)과 인절미를 만드는 순흥기지떡집(http://www.xn--ok0b44l27kuuh7wr.kr)에 들어가 떡 만드는 구경을 잠시 하다가 두 종류의 떡을 1.5kg씩 샀다. 이틀을 두고 이동 간에 먹을 양식으로 쓰기 위해서다.


 


오랜 만에 먹는 기지떡과 인절미는 맛이 좋았다. 영주지방에서 ‘여름에 친정 가는 며느리를 위해 시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상하지 않는 떡’으로 인기가 높은 기지떡은 쌀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떡으로 더위에도 쉽게 상하지 않고, 발효식품이라 소화도 잘되 결혼식, 회갑연, 돌잔치 등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방금 전에 식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떡을 한참 집어 먹고 나서, 척화비, 연리지 소나무, 읍내리 석불입상, 봉도각 공원이 있는 순흥면 사무소로 갔다. 지금이야 면사무소가 있는 작은 농촌 마을이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관광체육부 지정 ‘문화마을’인 순흥면은 흥주도호부가 있던 영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면사무소 뒤편에 연못에 정자가 3개나 있으며, 고목들이 둘러싸고 있는 봉도각 공원이 있고, 척화비에 연리지송, 송덕비 등이 즐비하여 옛 영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연꽃과 정자가 예쁜 공원에서 사진도 찍고 봉도각 정자에 올라 잠시 쉬고 나서 인근의 소수서원으로 갔다.


 


서원 입구에는 표지판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백 그루의 소나무 군락이다. 사군자의 하나인 소나무가 서원 주변을 뒤덮고 있는데, 이 적송들은 세한송(歲寒松) 또는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불린다. 이는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1542(중종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인 회헌 안향 선생을 흠모하여 그가 학문에 정진했던 ‘숙수사’란 절터에 사묘를 세우고, 이듬해 서원을 세워 흰 구름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백운동(白雲洞)이란 현판을 건다.


 


불교의 터전 위에 유교의 서원을 세운 곳이라 자유로운 학문적 사고와 틀이 소수서원 곳곳에서 이후에 세워진 다른 서원에서 맛볼 수 없는 형식의 파괴와 건물 배치의 여유로움 등을 통하여 느낄 수 있다.


 


퇴계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백운동서원에 대한 상소를 올리는데, 명종은 친히 무너져가는 교학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어필현판을 하사한다. 이로써 소수서원은 현판과 함께 서적, 노비, 토지를 하사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것이다.


 


입구 왼쪽의 학자수와 대비되게 우측에는 소수서원의 오랜 역사를 지키고 서 있는 한 쌍의 돌기둥이 서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다는 숙수사는 간 곳 없고, 유일하게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리는 당간지주만이 금낭화의 연분홍 꽃송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나는 일상적으로 드나들던 소수서원의 내부로는 들어가지 않고, 서원 우측 죽계천 옆에 있는 취한대(翠寒臺)로 갔다. 퇴계 선생이 대를 세웠으나, 오랜 세월로 인해 무너져 있던 것을 다시 터를 닦아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취한’이란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따온 것이란다.


 


여름에 이곳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맞으며 농주를 한잔 하면 무척 좋을 것 같다. 취한대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소수서원은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소수박물관으로 갔다.


 


소수박물관에는 영주의 역사와 인물을 통사적으로 분석한 유적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소백산 비로봉 아래 초암사에 있던 국보 78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복원본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세계적인 명품이다. 금동 반가상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앙드레 말로, 버트란트 러셀, 칼 야스퍼스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감동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현재 원본은 초암사에 있지 않고,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주시와 초암사가 돌려줄 것을 몇 차례 요구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몇 년 전 복원본을 만들어 소수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아울러 소수박물관에는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순흥읍내리 고분벽화’를 복원해 둔 유물이 있으며, 풍기에서 출토된 절의 당간지주의 맨 위에 세워서 쓰는 ‘금동용형당간두’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간두로는 매우 희귀한 유물이며, 당시의 조각사, 공예사, 건축사는 물론 도르래를 사용한 점에서 과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또한 지역의 여러 종가에서 기증받은 다양한 유물도 전시되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조선선비의 숨결과 유학의 역사를 보았다면, 소수박물관에서는 영주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영주의 불교, 유교 문화를 둘러보면서 고향에 대한 긍지를 느낀다.


 


김수종 기자.


 


 


 

[김수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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