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200년만의 서울나들이, 443년 만의 입궐

국립민속박물관, 상설 3전시관 ‘가족’ 부분 재개관
기사입력 2012.09.21 15:31 조회수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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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과 협력하여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가족’ 부분을 재개관한다. 상설전시실 제3관은 다채롭고 일목요연한 전시자료를 통해 ‘한국인의 일생’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외 관람객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재개관 하는 ‘가족’부분 역시 3관 전체의 주제 흐름에 맞추어 한국인의 가족 문화를 조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새로 선정된 전시자료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진성이씨 퇴계 이황가(家)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하였고 명망있는 유학자면서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했던 이황의 가족사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삶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번에 재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가족’ 부분에 들어서면 진성이씨 가계와 그 안에서 가장으로 집안을 바로 세우기에 노력한 퇴계 이황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자료에는 평소에 보기 힘든, 보물로 지정된 자료들을 포함하여 진성이씨 가문 기탁 자료 40여점이 전시되었다.


 


퇴계의 친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진성이씨세계 선조유묵11 眞城李氏世系 先祖遺墨十一’(보물 제548-2호)과 퇴계의 강학 장소인 도산서당陶山書堂의 현판은 가문과 학문을 바로 세우기 위한 그의 노력이 묻어나는 자료이다. 이와 함께 퇴계가 아들 이준과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선조유묵가서 先祖遺墨家書’(보물 제548-2호)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천원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의 도안을 자주 보게 되면서도 이름조차 생소한 경우가 많을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문신이자 유학자인 그를 모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가족’ 부분은 관람객이 평소에 익히 들어 잘 아는 인물을 내세워 그를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가족 문화를 표현함으로서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전시자료에 대하여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에 이용된 자료들은 대부분 최초로 안동을 떠나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들이다. 퇴계 이황이 1569년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예안으로 완전히 낙향한 후, 조선 정조대 퇴계의 종손 이지순이 영유현령으로 부임하면서 퇴계의 위패를 모시고 상경하여 성균관에서 제사를 지낸 이래 퇴계 이황의 관련 유물이 서울에 올라온 것은 200년 만이다. 특히 퇴계는 경복궁의 각종 현판 글씨를 쓰기도 하였으므로, 경복궁 경내에 있는 국립 민속박물관에서 퇴계 이황의 유물이 전시된다는 것은 퇴계 자신으로 보아서도 443년 만의 입궐인 셈이다.


 


재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가족’ 부분은  ①족보 편찬, ②조상의 권위 높이기, ③관직 진출, ④사회적 친분관계, ⑤경제생활, ⑥여성의 역할 등 총 6개의 주요 주제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가족애’라는 특별 주제를 선정하여 퇴계가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 남긴 편지를 전시하였다.


 


이야기가 담긴 전시 구성과 다양한 전시기법에 강점을 지닌 국립민속박물관의 역량에 어울리도록 퇴계의 편지는 태블릿PC 기반의 오디오북을 통해 그 내용을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더불어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반가(班家)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진성이씨 집안에 전래된 내방가사를 멀티미디어로 제작하여 제공하고 있다. 이는 문서류와 전적류 등 평면적 전시자료의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관람객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시가 전달하는 중심 주제에 효과적으로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기획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문화재 관리에 있어서 보존과 활용은 모두 중요한 분야이다. 소중한 문화재를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보존하는 것은 국가적 임무이나, 활용이 배제된 보존은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두 분야 간의 적절한 안배가 필요하다. 더불어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은 사업의 범위가 방대하고 큰 예산을 필요로 하기에 어느 한 기관에서 종합적으로 수행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재의 연구․보존에 힘쓰는 한국국학진흥원과 문화연구․전시 분야의 대표 격인 국립민속박물관이 협력하여 추진한 이번 사업은 문화재 수집․보존․활용과 관련된 기관 간 협업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본 협력 사업을 통해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훌륭한 문화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은 관람객들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더불어 매 해 26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곳인 만큼 문화재의 원 소장처인 진성이씨 가문의 인지도 향상에도 기여 할 것이며 문화재의 보존 및 활용에 대한 국가적 역할의 홍보 효과를 통해 개인 소장 문화재의 기탁․기증 활성화에 일조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재개관한 3관 ‘가족’부분 전경


‘가족애’라는 소주제로 구성된 전시공간 -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퇴계의 편지


오디오북 등 전시자료와 관련된 세부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테이블


 


개요


ㅇ 전시주제 :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퇴계 이황의 이야기
ㅇ 전시개시일 : 2012. 9. 20(목)
ㅇ 전시장소 : 국립민속박물관 상설3전시관 ‘가족’ 부분
ㅇ 전시유물 :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선조유묵 가서”, “사문수간”, “퇴계선생문집” 등


                    진성이씨 기탁 고문서, 고문헌 등 40여 점



중심 이야기 : 가장이자 가문의 중심으로서의 퇴계 이황


조선시대에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齊家]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治國平天下]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 최고 명문가인 퇴계 이황 집안도 마찬가지였다.한 집안을 이끌어 가는 가장으로서 퇴계는 손수 자신의 조상부터 손자 대까지의 가계도를 그려서 후대에 정식 족보가 편찬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었고[족보편찬], 단양군수 ․ 풍기군수 ․ 성균관대사성 ․ 대제학 ․ 지경연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자녀 교육을 통해 자식들도 자신과 같은 관직생활을 하기를 희망했다.[관직진출] 한편, 조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퇴계와 집안사람들은 서원과 정사를 조성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고, 퇴계 사후에는 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조상의 권위 높이기] 또한 퇴계는 지역의 유력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지속하여 명문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사회적 친분유지] 가난하게 자라났지만 근검 절약하여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다.[경제생활] 한편, 퇴계 집안의 여자들은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였다.[여성의 역할] 퇴계는 특히,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수시로 관심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는데 때로는 깊은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었고 또 한편으로는 학문에 매진하고 사악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도록 매섭게 질책하기도 하였다. 편지 내용 중 상당부분은 아들과 손자의 학업을 권장하고 있는 내용인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당시에도 명문가들은 자식 교육을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전시자료





진성이씨세계 선조유묵11 / 眞城李氏世系 先祖遺墨十一 / 16세기


진성이씨상계종택 기탁 / 보물 제548-2호


시조 이석(李碩)으로부터 손자인 이안도 대까지 가계를 세계도 형태로 그린 것으로 퇴계의 친필을 볼 수 있다. 고조부 이운후대부터는 혼인관계와 외손들을 모두 수록하였고, 어머니 춘천박씨의 세계도도 같이 편집하였다.


 



선조유묵 가서 / 先朝遺墨 家書 / 조선후기


진성이씨 상계종택 기탁 / 보물 제548-2호


퇴계가 아들 이준과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 할아버지로서 퇴계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나타난 글들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모두 10책이었으나 3책이 유실되어 7책만 남아있다.


 



이황문과급제홍패 / 李滉 紅牌 / 1534년


진성이씨 상계종택 기탁


이황이 문과에 급제하였을 때의 홍패이다. 문과 을과 1인으로 33명 중 4등으로 합격하였다.


 



도산서당 현판 / 陶山書堂 懸板


도산서원운영위원회 기탁


퇴계가 강학하던 도산서당의 편액으로 도산은 옛날 이곳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이우정국공신화상 / 李堣靖國功臣畵像 / 1506년


진성이씨 송당종택 기탁


1506년 중종반정의 공으로 정국공신 4등에 책봉된 이우(1469~1517)의 공신 영정이다. 1506년 정국공신으로 모두 106명이 녹훈되었으나 공신화상은 이우와 유순정 2인의 것만 남아 있다. 이우는 퇴계 이황의 숙부로 청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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